누구에게나 사는 방식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리고 항상 선택한다. 선택지에는 '답없음'도 물론 있다. 선택의 유보留保
'답없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떤건가?
누구에게나 사는 방식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그리고 항상 선택한다. 선택지에는 '답없음'도 물론 있다. 선택의 유보留保
'답없음'을 선택하는 이유는 어떤건가?
21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06년 난 카페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흘러 2009년, 난 다시 카페에 있다.
난 카페를 하고 싶어 했다. 언제부터지? 아마도, 그건 대학에 와서부터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학교 정문 길 건너에 있는 책대여점 죽돌이였다. 가게 간판은 '없어지지 않는 이야기'(물론.. 지금은 없어졌다), 서강대 출신 잘 나가는 외국계 보험설계사의 가게였다. 그 선배는 자신의 모교 앞에서 뭔가 좋은 것을 하고 싶어했다고, 그의 비서로부터 들었다. 사실 그를 본 적은 한번도 없다. 언제나 바쁘기때문에 가게에 일이 있을 땐 항상 미모의 여비서가 왔었다. 내가 그 곳에서 죽돌이로 보낸 시간은 아마도 한 학기 정도, 자연스럽게 다음 학기에는 죽돌이가 다음 단계로 변태(!)하여 알바생이 되었다. 알바생으로도 역시 한 학기. 예나 지금이나 난 만화와 애니에 무척이나 오덕대고 있지만, 그 당시에 알바생으로 만화책을 그것도 신간을 공짜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무척이나 행복한 일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그 곳에는 여유가 있었고, 대화가 있었고, 책, 특히 만화책(!)이 있었고, 언제나 커피가 함께 있었다.
그 곳의 커피는 마트에서 사온 원두커피를 기본으로 주변 가게에서 얻어온 출처불명의 갈아놓은 원두를 자그마한 커피머신에 내려먹는 정도였다. 주변 카페에서 점심값을 내고 먹는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의 커피를 공짜로 먹을수 있다니 이 얼마나 좋은가? 그 당시 카페에서 유행했던 커피는 흔히 사이펀이라 불렸던 Vacuum Pot과 French Press였다. 다들 커피의 맛이나 향을 따지던 때가 아니었기에 그냥 보기 좋은 게 좋은 거였고, 나역시 맛이나 향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가끔씩 향이나 맛이 특별한 녀석이 들어오면 '좋구나~' 하고 생각하는 정도.
그렇게 대학생활은 흘러갔고, 군대에서 뇌를 발효시키고, 호주를 다녀오고, 힘겹게 졸업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무렵, 우연하게 압구정에서 커피를 다시 만났다. 허형만의 커피 볶는 집, 말 그대로 커피를 직접 볶는 집이었다. 커피를 직접 볶다니. 사실 그때까지 난 커피가 커피나무 열매의 씨를 모아서 볶아놓은 것이란 것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곳에서는 온갖 맛이 나는 커피를 팔고 있었다. 커피란 좀 쓰고, 구수한 그런 녀석인줄 알고 있던 나에게는 상당한 충격이었고, 압구정에서 꽤 오랜 시간동안 커피강좌를 수강했다. 이런 저런 사정으로 거의 3년에 걸쳐 초급과 중급과정을 끝냈고(사실 고급과정은 없다-_-), 겨우 커피를 좀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졸업을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는 인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하자에서 인턴담임을 하고 노리단에서 악기를 만들다 호주가 그리워질때쯤 다시 커피가 나를 불렀다. 연대 산업공학과 출신 3인과 나와 연이 좀 긴 시원이 신촌에 카페를 연다고 나에게 커피와 차를 맡아 줄것을 부탁했다. 그때의 나는 수중에 남은 돈을 털어 호주로 갈 생각이었으나, 출발까지 시간이 좀 있었기에 그동안 카페일을 봐주기로 했다. 2006년, 노란 대문이 있는 카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카페 이름은 Trois Amis '트와자미'(트로이스 아미스..트로이의 군대가 아니다-_-;)라고 읽고 뜻은 세명의 친구, 불어다.
카페 인테리어 공사부터 집기들을 구매하고 정리하면서, 홍대에 있던 딜마티룸에서 홍차를 배웠다. 개인적으로 커피가 가지는 대중성만큼이나 홍차의 고고한 느낌이 맘에 들었던 나는 아미들(카페에서 사장들의 호칭이다)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다기들과 함께 프랑스제 '포숑'과 인도네시아제 '딜마'의 홍차를 카페에 들여놓을 수 있었다.
시원은 친구인 올리브의 도움으로 카페에 꽤나 고급스런 음식메뉴를 만들어냈다. 끼쉬를 시작으로 여러가지 샌드위치와 샐러드, 전설로 남을 초코케잌과 치즈케잌을 만들었다.
세상은 좋은 것만을 원하지 않는다. 좋은 것도 있어야하지만, 그냥 그런 것도 있어야한다. 때로 사람들은 그저 그런 걸 더 좋아하기도 한다. 카페는 힘들지는 않았으나 여러가지로 굴곡이 있었다. 카페는 거의 항상 음악이 흐르는 조용한 분위기이지만, 사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휘몰아치고 있다. 카페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장소이기때문이리라. 그때는 어찌보면 나는 그저 커피를 필두로 마실 것을 매우 좋아하고 맛을 좀 아는, 사회화가 덜 된 오타쿠였고, 카페를 찾는 손님들과 소통이 즐거운만큼 카페 내부에서 일어나는 소통의 소용돌이에는 무관심했다.
카페에 단골들이 늘어나고, 첫눈이 오고, 단골들과 함께 크리스마스파티를 하고, 난 급성맹장염으로 맹장꼬다리를 떼어냈다.
그렇게 카페에서의 첫 해가 지나갔고, 평화로운 듯 어지러운 듯 카페의 시간이 흘러갔다.
카페는 환상의 장소다. 사람들에게 환상을 파는 곳이다. 커피, 차, 케잌, 이 모든 것은 환상의 물건들이다. 커피, 차가 없다고 사람들은 죽지 않는다. 케잌이 없다고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사람들의 환상을 채워주는 물건이다. 음악이 있고 아름답게 치장된 인테리어와 환상을 만족시켜주는 음식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이상한 사람이 있는 장소가 바로 카페다.
카페에 오는 이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환상을 파는 곳, 그래, 뭔가 파는 곳이다. 장사를 하는 곳. 장사란 이득을 남기는 것이 그 기본 전제다.
트와자미는 첫 카페였다. 그 곳은 나에게도 환상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기본 전제에 신경쓰지 못했다. 아니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내 환상이었으니까. 다시 1년이 흘러갔다. 트와자미는 기본적으로 나만의 환상공간은 아니었다. 나를 포함해서 무려 5명의 환상이 겹쳐있는 공간이었다. 겹쳐진 환상이 한 공간에 투사되어 그 조화를 이루기는 참으로 어렵다. 계속 변화가 찾아왔고, 계속 다른 요구가 있었고, 난 그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지만 그랬다. 나는 그곳을 떠나게 되었고, 또다시 이곳저곳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며 시간이 흘렀다.